참을수없는 존재의 가벼움.


고등학교 때 한 선생님이 예전에 그런말씀을 하셨다.
꼭 책 안읽는 사람들이 책한권 읽은것에서 마치 자기개념인양 떠들고,
마치 다 아는양 떠들고 다닌다며...

책을 잘 읽지 않는 부류인 나 역시 그런걸까?

최근읽고있는 이책이 꽤나 마음에 든다.
 
되도않은 어설픈 연애들을 몇번하고나니 
구멍만 커져가고
만남과 관계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게 되고.
나의 존재와 그들의 존재와 우리의 관계의 어떤 참을수없는 가벼움에 참을 수가 없다.
 
독립적인 존재로 살아가고싶은 마음 한편에는
혼자라는 사무치는 외로움이 늘 따라다닌다.
 
왜 혼자라는 일이 때때로 미칠듯이 외로운일이 되었을까?


 
 

한 때 인간은 그의 가슴 깊은 곳으로부터 울려퍼지는 규칙적인 박동소리를
듣고 놀라 기겁을 하고,이것이 무엇일까 궁금해 한적이 있었다.

취리히에서 프라하로 돌아온 이래
토마스는 테레세와의 만남이 여섯개의 우연이 만들어낸 결과라는 생각에
불쾌한 심정에 사로잡혀 있었다.
그런데 한 사건이 보다 많은 우연에 의해 좌우될수록 보다 중요하고
많은 의미를 내포하고 있지나 않았을까?
우연만이 우리에게 어떤 계시로 보여졌다.
필연에 의해 발생하는 것, 기다려왔던 것, 매일 반복되는 것은
아무런 말도 하지 않는다.

하나의 사랑이 잊혀지지 않기 위해서는 성 프란체스코의 어깨에
새들이 모여앉는 여러 우연이 합해져야만 한다.

벗은 몸. 그게 어때서! 정상적인 거죠! 정상적인 모든 것은 아름다운 거예요!

그녀가 하고싶었던 말은
[당신이 약하길 바래요, 당신도 나처럼 약하길 바래요] 였다.

우리는 이미 그 대답을 알고 있다 : 그녀가 아버지를 배신했을 때,
삶은 길고 긴 배반의 길처럼 그녀 앞에 활짝 열렸고,
매번 새로운 배반은 마치 악덕과 승리처럼 그녀를 유혹했다.

그녀가  이 성당에서 예기치 않게 만난 것은 신이 아니라 아름다움이었다.
 
그날 이후 그녀는 아름다움이란 배반당한 세계라는 것을 알았다.
 
다른여자들에게 애교가 제 2의천성, 하찮은 습관이었다면,
그녀에게 그것은 자신의 능력이 어디까지 미치는지 밝혀주는
중요한 탐색의 분야였다.
그러나 너무 무겁고 심각한 그녀의 애교는
모든 가벼움을 상실하여 억지스럽고, 의도적이고, 과장될 수 밖에 없었다.

스탈린의 아들은 똥을 위해 목숨을 내놓았다.
그러나 똥을 위해 죽는 것이 의미없는 죽음은 아니다.
제국의 영토를 보다 동쪽으로 넓히기 위해 생명을 바친 독일인이나
조국의 세력을 보다 서쪽까지 뻗어나가게 하기위해 죽은 러시아인들.
그렇다, 이들은 멍청한 짓을 위해 죽었고,
그들의 죽음은 의미도 없고 보편적 결과도 낳지 못했다.
반면 스탈린 아들의 죽음은 전쟁의 광범위한 바보짓들 중에서
유일한 형이상학적 죽음이었다.

스코트 에리젠의 추론에서 우리는 똥의 신학적 정당화(달리 말해 신의학)의 열쇠를
찾을 수 있다.  인간이 천국에 머무는 것이 허락된다면 인간은 똥을 싸지 않거나
(발랑탱의 이론에 따른다면 예수와 마찬가지로),
혹은 이보다 더욱 개연성이 있는 견해로서 똥은 뭔가 혐오스러운 것으로
간주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인간을 천국으로부터 추방하면서 신은 인간에게
그의 추한 본모습과 혐오감을 보여주었다.
인간은 자기에게 수치심을 일으키는 것을 감추기 시작했고 자신의 베일을 벗자마자
그 찬란한 광명에 눈이 멀었던 것이다. 따라서 추한 것을 발견하자마자
인간은 흥분도 발견한 것이다.
똥( 말 그대로의 의미나 추상적 의미에서) 이 없다면 성적 사랑은
심장의 격렬한 박동과 감각의 맹목성이 동반되는 것과 같은,
우리가 알고있는 사랑과는 다른 모습이 되었을 것이다.

 
                        - 참을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밀란 쿤데라 - 


 똥에 관한 이야기는 정말 흥미롭게 다가왔다.  
 인간 본연의 당연한 것들이지만 사람들은 감추고 싶어하는 추한것들.
 이것들에 관한 고민을 예전부터 하고있었기 때문이다.
 누구나 똥과 오줌을 누고 그것들 없이는 또 살아갈 수 없는데 
 왜 그것들은 혐오스러운 존재일까?
 몸에 털이나는 것은 당연한 일인데 왜 그것들이 혐오스러워 보일까?
 개인적으로 몸에 털이 많은덕에 더더욱 그랬는지도 모른다.
 
사실 여전히 난 항상 갈등한다.
자연스러운 본연의 실채를 보여주는 것과, 
사람들이 흔히 혐오스럽다고 여기는 것을 적당히 감추며 보여주는 것
무엇이든 적당한 것이 좋으니 적당한 선을 지키는게 좋겠지만
그 선을 찾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때때로 괜한 저항심리에 반발하고싶은 마음도 강렬하다.
   
한때는 겨드랑이털 에 대한 퍼포먼스를 해보는게 어떨까? 생각도 해봤지만
이 생각 반면으로 그 퍼포먼스를 했을경우 사람들의 반응, 
특히 여자로서의 매력이 굉장히 떨어질것이라는 조바심이 강하게 들었다.
   
나도 여자인 까닭에 사실은 남자로부터 사랑받고 싶은 마음도 많이
있는듯하다.
그래서 이런 더더욱 이런 갈등에 부딪힌다.
한 사람으로서의 나와 
랑을 받고싶은 사람으로서의 나사이 
(꼭 남자를겨냥한건 아니지만 대개 보통남자들은
한 사람으로서의 여자보다는 여자로서의 한 사람을 좋아한다.)

보편적인 취향과 나의 취향이 언제나 같을 수는 없고,
한 사람과 한 여자 라는것의 차이는 꽤나 클수가 있다.
   
예를 들자면 나의 고민은 이렇다.

하이힐과 주머니도 없고 조금은 불편하지만 입으면
날씬하고 예뻐보이는 원피스.
 와 
낮은컨버스에 편하고 내가좋아하는 취향이지만, 입었을때
딱히 날씬하고 예뻐보이지 않는 옷.

적당한 표현일지는 모르겠지만, 난 항상 이 둘사이에서 갈등한다.   
가장 좋은 것은 내가 좋아하는 취향이면서도 예뻐보이는 옷을 찾는것이겠지만 
좀처럼 쉬운일이 아니다.

  
   (어쩌다 이야기가 이렇게 흘러왔을까)   

by 회색빛 | 2007/08/09 03:24 | 책과그것 | 트랙백(1) | 덧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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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 밀란 쿤데라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밀란 쿤데라 지음, 이재룡 옮김/민음사 영화 '프라하의 봄' 의 원작인 밀란 쿤데라의 소설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아마 이 책을 읽어보지 않은 사람들도 책의 제목 만큼은 텔레비젼이나 기타 여러가지 미디어를 통하여 한두번씩은 들어보았을 듯한 유명한 작품. 책의 내용은 4명의 등장인물의 스토리를 통......mo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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